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2012년에 개봉한 윤종빈 감독의 작품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그 시절, 대한민국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조직폭력배들을 색출하고, 사회의 어둠을 걷어내려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전쟁의 이면을 그린다. 단순한 경찰과 깡패의 싸움이 아니라, 부패한 공직자, 정치와 결탁한 조직, 살아남기 위해 나쁜 놈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최민식이 연기한 ‘최익현’이라는 인물이 있다.
최익현, 그가 선택한 생존 방식
최익현은 단순한 깡패가 아니다. 그는 세무 공무원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본능적으로 읽어내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착한 사람도, 완전히 나쁜 사람도 아닌 그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헤쳐 나간다. 처음엔 우연히 마약 밀수 사건에 연루되지만, 이를 계기로 점점 더 깊이 조직과 얽혀간다. 최익현을 연기한 최민식의 연기는 단순히 무섭거나 강한 것이 아니라, 비열하면서도 어딘가 애잔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욕을 퍼부으며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에서는 통쾌함을 느끼다가도, 위기에 몰려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 할 때는 한 인간의 절박함이 피부로 전해진다.
그는 강자가 아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빠르게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조직폭력배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고, 끊임없이 기회를 엿보며, 필요할 때는 잔인할 정도로 사람을 내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 역시 시대의 흐름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존재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지만, 그 결말이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사실처럼 다가온다.
예상치 못한 캐릭터들의 존재감
하정우가 연기한 ‘최형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다. 겉으로 보기에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조직폭력배지만, 그는 단순한 악인이 아니다. 오히려 비즈니스적인 감각을 갖추고 있으며, 철저한 현실주의자로서 움직인다. 최익현과의 관계에서도 그가 단순한 부하나 조력자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라는 점이 흥미롭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은근히 드러나는 인간적인 모습들이 있다. 특히 그가 조직원들에게 보여주는 태도나 위기의 순간에서 내리는 결정들이 그저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입체적인 캐릭터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의외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또 다른 인물은 곽도원이 연기한 ‘김판호’다. 조직 내에서 늘 뒤처지는 듯한 모습이지만, 그 역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어딘가 부족해 보이지만 그런 인물일수록 현실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 법. 그의 존재가 영화에 주는 묘한 긴장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시대가 만든 나쁜 놈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범죄 조직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시대가 만든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대한민국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 변화 속에서 누군가는 도태되고, 누군가는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다. 영화는 이 과정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구나 나쁜 놈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분위기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결국 범죄와의 전쟁은 단순한 갱스터 무비가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그 시대를 통해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작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민식과 하정우의 강렬한 연기 덕분에 더욱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영화다. 시대가 만든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그리고 그 끝자락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